홀연히 떠났던 김주형 "KIA 팬들에게 작별 인사도 못 건네 죄송했다." [엠스플 인터뷰]

작성자
sajwndfl
작성일
2021-01-14 17:37
조회
14
-KIA ‘애증의 선수’ 김주형, 2019년 현역 은퇴 뒤 서울컨벤션고 코치로 부임

-“유망주 시절부터 항상 쫓겼던 현역 생활, 코치 시작하니 표정도 밝아졌다더라.”

-“2016년 커리어 하이 흐름 못 이어간 게 아쉬워, 2017년 KS 마지막 순간은 아직도 아찔해.”

-“타격 자세 자주 바꾼 걸 가장 후회, 후배들은 내가 한 실수 반복하지 않길”

-“가족 향한 악성 댓글이 가장 큰 상처, 현역 연장 시도도 포기한 이유”

-“신생팀 서울컨벤션고 학생들의 성장 뿌듯해, 강요하지 않는 지도자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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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뉴스=남양주]

 

“아내가 결혼한 뒤 이렇게 밝은 얼굴을 처음 본다고 하네요.”

 

서울컨벤션고 야구부 김주형 코치는 2020년 고등학교 신생팀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현역 유니폼을 벗은 그에게 평소 어딘가 어두웠던 얼굴 구석이 사라졌다. 전쟁터에서 항상 쫓기던 삶에서 벗어난 김주형 코치에게 제법 여유도 느껴졌다.

 

KIA 타이거즈 팬들에게 ‘선수 김주형’은 대표적인 애증의 인물이다. 해마다 ‘이제는 터져야 할 때’라는 팬들의 기대가 김주형을 향해 쏟아졌다. 현장의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현장 지도자들은 준수한 하드웨어를 보유한 우타 거포 자원인 김주형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어떻게든 김주형을 활용하고자 고등학교 때 뛰었던 유격수 자리에 그를 활용하기도 할 정도였다.

 

김주형은 프로 13년 차인 2016년 시즌 19홈런으로 데뷔 뒤 처음으로 제대로 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그 기세를 2017년까지 못 이어갔다. 김주형은 2017년 한국시리즈 5차전 9회 말 결정적인 송구 실책을 범하는 아찔한 경험까지 맛봤다.

 

2018년 6경기 출전을 끝으로 1군 무대에서 사라진 김주형은 2019년 내내 2군 생활을 이어가다 현역 은퇴를 택했다. 김주형의 KBO리그 통산 기록은 750경기 출전/ 타율 0.224/ 405안타/ 61홈런/ 222타점이다.

 

김주형은 현역 은퇴 결정 뒤 특별한 작별 인사도 없이 홀연히 팀을 떠났다. 그리고 김주형은 오랜 기간 준비했던 아마추어 지도자로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제2의 야구 인생을 1년 동안 겪은 ‘지도자 김주형’은 KIA 팬들에게 못다 한 작별 인사를 건네기 위해 엠스플뉴스와의 인터뷰에 응했다.

 

- 잊을 수 없던 데뷔 시즌 첫 홈런, 그리고 오랜 유망주 생활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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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유니폼을 입었을 때보다 훨씬 표정이 편안해 보입니다(웃음).

 

표정뿐만 아니라 마음도 편안합니다(웃음). 아내도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결혼 생활 7년 동안 2020년 한 해가 가장 편안해 보였다고요. 아무래도 현역 시절엔 항상 쫓기는 상황에서 나오는 초조한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나 봅니다.

 

2004년 프로 입단 때부터 이미 타이거즈 최초 1차 지명 신인 야수로서 큰 기대를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압박감이 심했을 듯합니다.

 

솔직히 고졸 야수 신인이 데뷔 시즌부터 곧바로 잘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최근에 나온 이정후나 강백호 선수는 정말 특별한 사례고요. 거기다 대졸 신인들이 더 많았던 15년 전 환경이었잖아요. 저는 프로 무대에서 곧바로 잘해야겠단 생각보단 2~3년 정도 고생하면서 배워야겠단 생각으로 입단했죠. 1, 2년 차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3년 차부터는 진짜 초조하더라고요.

이제는 유망주의 알을 깨야 한단 주위의 기대가 컸겠습니다.

 

그때부터 계속 쫓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군대 문제도 있었고요. 더는 유망주가 아니라는 주위의 시선에 이젠 무언가 보여줘야 한단 압박감도 느꼈죠.

 

이후 오랜 기간 야구가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젊은 시절 기억에 남는 한 가지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데뷔 첫 홈런의 기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2004년 신인 시절 잠실구장에서 당시 LG 트윈스 마무리 투수였던 진필중 선배님을 상대로 9회 초 동점 솔로 홈런을 쏘아 올렸어요. 팬들의 환호성을 느끼면서 선배들의 축하를 받는데 ‘이런 게 프로야구의 맛이구나’라고 느꼈죠(웃음).

 

- 2017년 한국시리즈 아찔했던 마지막 순간, 김주형 "현종이가 나를 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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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질 듯 말 듯 했던 ‘만년 유망주’ 김주형의 이름을 제대로 알린 해는 2016년이었습니다. 2016시즌에서 135경기 출전 타율 0.281/ 97안타/ 19홈런/ 49타점으로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습니다.

 

솔직히 저도 2016년에 왜 그렇게 야구가 잘 됐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야구 인생에서 이렇게 야구가 잘 풀릴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 시기였어요. 해마다 똑같이 열심히 야구했는데 유독 2016년에만 좋은 결과가 나왔으니까요. 지금 돌이키면 당시 아내와 결혼하고 첫째 아들까지 낳은 좋은 기운이 온 게 아닌가 싶죠(웃음). 한 가정의 아들에서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책임감도 있었고요. 또 마지막 경기에서 펜스 앞에서 잡힌 타구 때문에 시즌 20홈런 고지에 못 오른 점이 안타깝죠. 거기까지가 제 실력이었나 봅니다.

 

2016년 ‘커리어 하이’의 기세가 2017년에 못 이어진 점은 아쉽습니다. 2016년 오키나와 마무리 캠프에도 참가해 다음 시즌을 힘들게 준비했던 김주형 선수의 장면이 기억납니다.

 

원래 제가 마무리 캠프에 참가 안 해도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2017년에도 기세를 이어가자는 마음으로 의욕적으로 마무리 캠프에 참가해 차기 시즌을 준비했어요. 당시 김기태 감독님과 1대 1로 전담 훈련을 받으면서 정말 힘들게 연습한 기억이 나네요. 나름대로 자신감을 느끼고 2017년을 맞이했는데 너무 잘해야 한단 부담감 때문인지 다시 추락을 겪었죠.

 



 

2017년 정규시즌에서 긴 부진을 겪은 가운데 한국시리즈 엔트리엔 김주형 선수의 이름이 포함됐습니다.

 

솔직히 한국시리즈 엔트리 합류 얘길 듣고 의아했습니다. 그해 제가 한 게 없는데 이름이 들어갔었으니까요. 그래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합류한 만큼 어떻게든 팀에 민폐만 끼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상상하기 싫은 그 장면이 갑자기 찾아왔죠.

 

한국시리즈 5차전 9회 말 수비 상황이군요.(김주형은 시리즈 전적 4대 1로 앞섰던 한국시리즈 5차전 9회 말 대수비로 경기에 출전했다.)

 

개인적으로 한국시리즈를 처음 경험하는 거라 모든 순간이 얼떨떨했습니다. 9회 말 대수비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7대 6 한 점 차 리드에 1사 1루 상황이고 상대 타자가 희생 번트를 노릴 수 있는 빠른 선수(조수행)였어요. 번트 수비를 대비했는데 날씨가 추워서 손가락이 잘 안 풀린 탓도 있었죠. 어쨌든 1루 송구가 빠지면서 그 순간 마음속으로 욕이 나왔죠. 그 뒤로 버텼던 시간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마무리 투수로 나온 양현종이 이어진 1사 만루 위기를 무실점으로 막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했습니다.

 

(양)현종이가 선배 한 명을 살린 셈입니다(웃음). 그 실책으로 만약 팀이 졌다면 시리즈 향방은 미궁 속이었어요. 아마 준우승을 했다면 저는 광주에 다시는 발을 못 디뎠겠죠. 마지막 상대 타구가 높게 뜨는 순간 다른 선수들은 다 마운드로 뛰어가는데 저만 주저앉았어요. 김기태 감독님이 다가와서 ‘네가 MVP가 됐다’라며 웃으신 장면도 기억이 나네요. 프로 선수로서 우승 한 번은 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죠.

 

- "2016년 커리어 하이에서 잊을 수 없는 은사는 김기태 감독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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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감독은 김주형 선수에게 잊을 수 없는 지도자일듯합니다.

 

모든 지도자분에게 감사하지만, 특히 김기태 감독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엄할 땐 엄하셨고, 부드러울 땐 부드러우신 감독님이었어요. 야구 내적인 부분만 아니라 야구 외적인 생활에서도 많은 걸 배웠습니다.

 

2016년 김기태 감독이 유격수 김주형 카드를 과감하게 꺼낸 기억도 납니다.

 

감독님이 처음에 유격수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장난을 치시는 줄 알았습니다. 조금 하다가 말겠지 했는데 스프링캠프 내내 유격수로 나가니까 아 제대로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고등학교 때까지 유격수 수비를 소화했는데 프로 레벨은 또 다르니까요. 딱 1개월 정도 유격수로 뛰고 나서 감독님한테 도저히 안 되겠다고 털어놨습니다.

김기태 감독의 답변이 궁금합니다.

 

감독님께서 ‘알겠다. 미안하다. 너에게 많은 짐을 준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유격수로 뛰는 동안 10kg 넘게 살이 빠졌거든요. 유격수로 뛰면서 많이 움직인 것도 있고 스트레스도 컸어요. 그래도 팀에서 원한다면 어떤 포지션이든 소화해야 한단 생각은 있었죠. 프로 무대에서 포수-투수-중견수를 빼고는 다 뛰어봤을 겁니다.

 

끝내 KIA 팬들이 원하는 활약상은 제대로 못 펼치고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프로 생활을 돌이키면 가장 아쉬운 점이 무엇입니까.

 

‘멘탈’이죠. 1군과 2군을 계속 오가면서 압박감을 크게 느꼈습니다. 1군에서 주어진 기회에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단 생각이 저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죠. 조금이라도 안 풀리면 크게 실망하고요. ‘누가 뭐라고 하든지 내 야구를 했으면’이라는 후회가 가장 큽니다. 지금 학생선수들에게도 후회를 남기지 말고 야구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해요.

 

타격 자세와 관련한 후회도 있습니까.

 

저는 야구가 안 풀릴 때마다 자주 타격 자세를 건드렸습니다. 저에게 맞는 타격 자세를 고정해서 연습한 게 아니었죠. 주위의 말에 잘 휘둘리기도 했고요. 당시엔 그게 옳은 길인 줄 알았습니다. 너무 많은 얘길 적용하려다 보면 어느새 제가 해야 하는 야구가 무엇인지 잊게 되더라고요.

 

KIA 후배 최원준 선수도 2020년 후반기 고등학교 시절 타격 메커니즘으로 돌아가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그게 자신에게 맞는 타격 자세라고 판단했더군요.

 

그런 방향성이 좋은 건데 사실 고등학교 때 잘 치던 타격 자세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습니다. (최)원준이는 타격 센스 자체가 좋으니까 그런 과정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우리 학생선수들에게도 함부로 타격 자세를 건드리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에 팬들의 많은 오해, 독하게 야구했는데 억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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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팬들의 비판과 비난도 ‘멘탈’에 영향을 끼쳤을 듯합니다.

 

(짧게 한숨을 내쉰 뒤) 저만 욕하면 상관이 없는데 가족들을 건드리면 정말 힘들더라고요. 악성 댓글이 더 심했을 때이기도 했고요. 저 때문에 죄 없는 가족들이 피해를 보잖아요. 현역 연장을 쉽게 포기한 것도 그 이유가 컸어요. 굳이 가족들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듣게 하면서 제가 1~2년 더 욕심을 부리기 싫었죠.

일부 팬은 선수 김주형을 향해 ‘독하게 야구를 하지 않는다. 표정에서 의욕이 안 느껴진다’라는 식으로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억울한 부분이죠. 저는 정말 열심히 야구했습니다. 조범현 감독님 시절엔 1년에 하루 이틀 정도만 쉬고 매일 운동했어요. 현역 시절 겉으로 보이는 느릿느릿한 이미지로 오해를 받으니까 억울한 적이 많았죠. 표정이 강해 보이려면 수염까지 길러야 하나 싶을 정도로요(웃음). 돌이키면 그런 말에 동요하지 말고 뻔뻔하게 야구를 해야 했죠. 강한 멘탈이 부족했어요.

 

현역 은퇴 뒤 곧바로 아마추어 지도자를 택한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사실 2군에 오래 있었던 2017년부터 아마추어 지도자를 준비했습니다. 2019시즌을 끝내고 진짜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몸 상태만 생각하면 1~2년 더 도전할 수 있었겠지만, 마음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다른 팀을 가더라도 기회가 와서 잘할 수 있단 보장도 없었고요. 현역 생활에 대한 미련은 거의 없었죠.

 

신생팀인 서울컨벤션고 코치로 합류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래 결혼할 때 분양받은 집이 경기도 광주에 있었습니다.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수도권으로 올라오게 됐는데 학창 시절 은사님의 소개로 서울컨벤션고 코치 자리를 제의받았어요. 학생선수들의 사연이 많은 팀이고, 저도 아이들과 재밌게 야구할 수 있겠단 생각이었죠.

서울컨벤션고는 신생팀임에도 2020년 창단 원년 황금사자기 16강 진출과 서울시 추계리그 3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1, 2학년 위주의 선수단 구성에도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는 평가입니다.

 

사실 처음엔 어떻게 학생선수들과 야구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야구를 더 잘하고 싶은 의욕과 의지가 느껴지더라고요. 신생팀에 오는 학생선수들은 각자 사연이 많은 아이들입니다. 저도 최대한 잘 보듬어주려고 노력했고요. 어떻게 보면 지도자로서 제 첫 제자들이니까 더 애정이 갑니다.

 

‘지도자 김주형’의 철학이 궁금합니다.

 

학창 시절부터 현역 시절까지 경험을 토대로 강압적인 지도를 절대 안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절대 강요하지 않는 지도자가 되자는 마음가짐이 첫 번째였죠. 기술적인 부분은 정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타격 자세 변화를 제안할 때도 학생선수의 뜻에 따르고, 아니라고 스스로 판단하면 다시 원래 자세로 돌아가라고 강조합니다. 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큰 거죠.

 

- 지도자 김주형의 진심 "후배들은 내가 걸었던 길을 걷지 않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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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 가운데 ‘5툴 유망주’ 조원빈을 향한 기대감도 크겠습니다. 벌써 2021년 1차 지명 서울권 유력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립니다.

 

한 마디로 정말 ‘독한’ 선수입니다. 1년 동안 체중을 25kg 정도 감량한 선수예요.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진짜 해내는 선수더라고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저런 힘과 속도를 보유한 선수가 국내에 있었을까 할 정도에요. ‘5툴 완성형 선수’ 자질이 보이는데 저는 오히려 국내보다 미국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기대가 큽니다.

 

학생선수뿐만 아니라 프로 무대에 있는 후배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듯싶습니다.

 

무엇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야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위에서 하는 말에 너무 많이 흔들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야구를 하길 바랍니다. 후배들은 제가 걸었던 길을 걷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어중간하게 야구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도자 김주형의 꿈은 무엇입니까.

 

저와 인연을 맺은 학생선수들이 모두 잘 풀리는 꿈을 꿉니다. 야구를 못하다고 더 미워할 것도 아니고 잘한다고 더 좋아해 주지 않을 겁니다. 모든 학생선수를 평등하게 지도하면서 함께 즐거운 야구를 하고 싶어요. 다들 큰 꿈을 품도록 옆에서 조금이나마 도와주는 ‘지도자 김주형’이라면 만족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어떤 말입니까.

 

KIA 팬들에게 꼭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사실 팀에서 나올 때 마음이 힘들어 KIA 팬들에게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못 드리고 나와 정말 죄송했습니다. 미안하고 감사하다는 말도 못 했거든요. 팬들의 오랜 기대에 부응 못 하고 이렇게 유니폼을 벗게 됐네요. 야구를 더 잘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끝맺음하고 떠나 죄송합니다. 멀리서나마 팀을 응원하면서 학생선수 양성에 힘쓰겠습니다. ‘지도자 김주형’은 ‘선수 김주형’보다 더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했습니다.

 

온라인카지노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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