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룸메들 밤마다 성폭력…아들, 엄마가 다 밝힐게”[인터뷰]

작성자
sajwndfl
작성일
2020-07-29 13:57
조회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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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한군이 사망하기 전 아빠 근용씨와 약속하는 모습. 근용씨는 "태한이의 슬픔과 아픔을 꼭 밝힐게"라고 약속한 뒤 아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오른쪽은 전남도교육청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근용씨. 시영씨 제공
“하늘에서 지켜봐줘. 태한이의 슬픔과 아픔을 꼭 밝힐게.”

광주에 거주하는 김시영(39)씨와 김근용(39)씨는 지난 3일 이 약속을 끝으로 첫째 아들 태한군(13)과 이별했다. 사인은 급성 췌장염으로 인한 패혈증이었다. 올해 중학교 1학년이 된 태한군이 전남 영광의 기숙형 대안학교로 떠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벌어진 일이다. 누구보다 건강했던 아들의 죽음에 부모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태한군은 사망 전까지 동급생 4명에게 당한 성폭력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부모는 가해자들의 지속적인 성적 괴롭힘, 미온적이었던 학교 측 대처가 태한군을 죽음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가해자들이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영씨는 28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던 담당자들의 징계와 명확한 진상규명을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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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한(왼쪽)군과 시영씨. 시영씨 제공
‘룸메이트’의 성폭력…매일 악몽이었다

시영씨는 태한군이 처음 피해를 호소했던 지난달 19일을 잊지 못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지난달 7일 개학한 뒤 두 번째 맞는 주말이었다. 평소 기숙사에서 지내다가 주말에만 집에 왔던 태한군이 울면서 “아이들이 죽을 것 같은 소리를 냈어. 진짜 죽을까봐 무서워”라고 말했다. 태한군이 지목한 ‘아이들’은 같은 방을 쓰는 A·B군과 이들의 친구인 C·D군이었다.

태한군은 기숙사 입소 사흘 만에 악몽같은 상황과 맞닥뜨렸다. 발단은 성관계 경험을 묻는 A군의 질문이었다. 음란동영상도 본 적 없던 태한군은 “없다”고 답했고, 이후 괴롭힘이 시작됐다. ‘룸메이트’인 A·B군 외에도 다른 방을 쓰는 C·D군까지 가담했다. 이들은 자신의 성기를 태한군의 신체에 접촉하거나 태한군의 신체를 겨냥해 성적인 농담을 했다. 태한군 앞에서 유사성행위를 하고 동참할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태한군이 수차례 거부의사를 밝혔지만 멈추지 않았다. 시영씨에 따르면 A군은 “부모님이 알면 법원에 가게 된다”며 겁을 주기도 했다.

태한군은 피해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한테 레슬링을 하는 줄 알았어. 그런데 엉덩이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내려오라고 했어. 죽을 것처럼 이상한 소리도 냈어.” 그만큼 성적인 것에 관심이 없던 아이였다. 태한군은 보호받지 못하는 낯선 상황 속에서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학생들이 취침시간 중 다른 방에 가는 것은 금지사항이었지만, C·D군은 태한군의 방을 들락거렸다. 시영씨가 학교 측의 관리 소홀을 주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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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한이가 지난 23일 영광교육지원청 피해자 조사에서 작성한 학생 확인서. 시영씨 제공
시영씨는 태한군이 심적 고통을 호소하는데도 학교 측에서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지 않았고, 적절한 징계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태한군이 지난달 30일 급성 췌장염으로 응급실에 간 것도 학교 측 책임이 크다고 했다. 그는 “아들이 신고 후 학교에 가지 않았는데, 선생님과 친구들을 많이 보고 싶어 했다”며 “그래서 지난달 29일 잠깐이라도 학교에 다녀올 준비를 하다가 가해자 중 1명이 여전히 등교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됐고, 그날 심각한 불안 증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또 “그전에도 소변을 조절하지 못하고, 먹지 못 하고, 잠도 못 자는 등 불안해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울면서 두려움을 표현하다가 새벽 6시쯤 겨우 잠들었다”면서 “오전 11시쯤 이상 증세를 보여 급히 병원에 갔다가 급성 췌장염 진단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태한군은 입원한 지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 시영씨는 건강했던 태한군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성폭력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학교 측의 미흡했던 대응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지난 9일, 태한군이 사망한 후에야 열린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심의 결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시영씨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진술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징계 결정을 유보했다”며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했지만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들, 그 말 기억하지?…다시 만나자”

시영씨는 27일 주인공이 없는 미역국을 끓였다. 그리운 아들, 태한군의 생일이었다. 시영씨는 태한군을 “용돈이 모이면 할머니 할아버지 선물부터 사던 아이, 엄마 아빠 생일마다 케익과 선물을 만들던 정말 순수했던 아이”라고 기억했다. 초등학생 때 만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도 사랑받는 아이였다고 한다. 이 사건이 알려진 뒤 초교 선생님과 친구들은 태한군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작성해 경찰에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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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친구들의 진정서. 시영씨 제공
두 살 터울의 동생과 우애도 깊었다. 시영씨는 “둘째 아들이 밤마다 형이 보고 싶다고 4시간씩 운다”며 울먹였다. 태한군이 동생에게 했던 이야기는 시영씨의 가슴에 아프게 남았다. 태한군은 “너는 친구가 네 몸을 만지면 엄마한테 빨리 말해. 형처럼 말 못 하면 안 돼”라고 말했다고 한다.

시영씨와 근용씨는 지난 14일부터 전남도교육청에서 교대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제 아들 김태한을 살려주세요’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교육청 앞을 지킨다. 이들의 호소로 지난 17일 대책본부가 구성돼 진상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시영씨는 여전히 문제점이 많다고 주장했다. 처음 성폭력 피해를 신고했을 때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교육청 주무관들이 대책본부에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담당 경찰도 태한군의 담임교사를 신고 접수 40여일 뒤에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하는 등 늑장수사를 벌이고 있다며 상급기관인 교육청과 경찰청이 나서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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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시위 중인 근용씨. 시영씨 제공
외로운 싸움이지만, 한 줄기 희망도 봤다. 지난 16일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이 태한군의 생일 날 청와대 답변 기준인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것이다. 배우 이시언이 인스타그램에 청원링크를 공유한 영향도 컸다. 시영씨는 “저희 부부 둘이서만 싸울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국민이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이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진상을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감정을 억누르는 듯 갈라지는 목소리로 통화를 이어가던 시영씨는 태한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힘겹게 첫마디를 꺼냈다가, 한참 눈물을 흘리다, 다시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태한아. 너의 아픔을 전국민이 공감하고 응원해주고 있어. 그러니까 하늘나라 여행을 하면서도 아파하지 말고, 슬퍼하지 말고, 행복하게 지내길 바라. 아빠가 했던 말 기억하지? 무서울 때는 안 무섭다, 안 무섭다 외치면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말. 하늘나라에서 착한 천사가 돼서 여행하길 바랄게. 꼭 다시 만나자, 잘 지내야 해.”

슬롯사이트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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